정상적 멘탈을 가진 자라면 가급적 문인들 행사엔 가면 안 된다. 문인들만 모이는 행사 따위를 조장해서도 안 된다. 그거 참, 곤란하고도 슬픈 일이다.
어제 나는 종강 후에 너무나 막막하고 서러워서 또 값싼 술을 마셨다. 나보다 두어 시간 뒤에 강의가 끝나는 이수명 시인을 기다렸는데, 이수명 시인은 내가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122차원 시인이시다. 아무튼 나는 그를 기다렸는데, 그는 서울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당대 유수의 문학상을 섭렵한 시인답게, 아아, 시바, 나의 낮술 상태가 위태로워 보였던지 어떻게든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침착하고도 서늘한 시니피에로 말씀하시는 거였다. 오늘 나는 내 제자 시상식 뒤풀이에 가야 해요.
그 제자, 듣고 보니 내 후배 황인찬 시인이었다. <구관조 씻기기>라는 시집으로 민음사 3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또 거듭 이야기하고 싶은 거시, 김수영도 어려운데 문학상까지....받을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외롭고도 외로웠으므로 조낸 비겁한 말투로 말했다. 저기.... 제 집이 거기서 머지 않은데, 저도 좀 데리고 가시면 안 될까요?
내 방에서 직선 거리로 300m의 술집에서 나는 모란시장에 끌려 온 강원도 둔내 강아지처럼 서러웠다. 도무지 나보다 늙은 사람이라곤, 까만 테 안경을 이상하게 쓴 김혜순 시인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내가 문학과지성사 베스트셀러 시인인데, 싶어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거기엔 나보다 근육이 발달한 어린 거뜰이 너무 많았다. 내 후배 시상식 뒤풀이에 배가 고파서 갔다가 얻어맞을 수는 없는 거였다. 그건 너무나 슬퍼서 김기덕이나 홍상수 같은 오버적 존재에게나 써먹힐 소재였다, 오버.
그런데 역시 시 쓰는 거뜰보단 아무래도 소설 쓰는 잉간들이 싸가지가 낫다고 사해본 성경 외전에 적혀 있듯이, 어느 찬란한 청년 하나이 고요히 내 옆에 앉아 아는 체를 하는 거시었다. 저.... 류 근 선생님이시지요. 저..... 제가 페북 팬입니다.
아, 시바. 시의 팬도 아니고, 낮술의 팬도 아니고, 페북 팬이라니.... 내 참람한 낯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다시 고요한 손길로 책 한 권을 쥐여주며 말했다. 오늘 술값, 저도 반 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아아, 시바. <능력자>라는 소설로 올해 <오늘의 작가상> 받은 최민석이었다. 오늘도 어려운데 작가상까지....라니.
아무튼 나는 거듭 말한다. 정상적 멘탈을 가진 자라면 부디 문인들 행사엔 가지 말라. 그런 자리도 조장하지 말라. 세상의 온갖 가련하고 드럽고 쪽 팔린 존재들끼리 붐빈다. 조낸 붐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오후 6시부터, 대학로 <서피동파>에서 열리는 고흥 시인 박호민 형의 첫 시집 출판 기념회에 가련다. 거기엔 여자도 오고, 백수도 오고, 바리톤도 오고, 의사도 오고, 옛날 애인도 오고, 시방 애인도 오고, 시인도 오고, 슬픔도 오고, 기쁨도 오고, 겨울비도 온다. 들비는, 먹을 게 없어서 안 온다. 그러니 벗들, 나의 후광 1만 촉광의 빛난 미모 확인하시려거든 부디 혜화역 4번 출구로 오시라. 오늘은 만나서 우리끼리 망가져도 참 좋은 기후다. 나는 또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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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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