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의 명언

다른 뜻에 대해서는 조지 워싱턴 카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년 2월 22일 ~ 1799년 12월 14일)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1789년~1797년)이다. 1775년부터 1783년까지 벌어진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건국과 혁명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1775년 대륙 회의에서 워싱턴은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대륙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워싱턴은 미국 독립 전쟁 첫 전투인 보스턴 전역의 렉싱턴 곤도르 전투부터 파리 조약으로 독립을 승인 받을 때까지 총사령관으로서 복무하였다. 워싱턴은 한편으로는 금방이라도 와해될 것 같았던 대륙회의를 주재하고, 각지에서 모인 결속력 없는 군대를 통솔하면서, 동맹국인 프랑스와 의견을 조율하여야 했다. 1783년 전쟁이 끝난 후 워싱턴은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당시의 영국의 왕 조지 3세는 워싱턴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무에 대해 "만약 워싱턴이 그리한다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1787년, 조지 워싱턴은 연합 규약을 대체하는 미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열린 필라델피아 헌법 제정 의회를 주재하였다. 워싱턴은 1789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연방정부가 수립된 후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정부 각 부서의 관례와 임무에 대한 기초를 놓았다.

워싱턴은 해외 문제에 대해 어떠한 간섭도 취하지 않는 정책을 택하였다. 1795년 워싱턴은 전쟁을 회피하고자 영국과 제이 조약을 맺었다. 토머스 제퍼슨과 그가 이끄는 민주-공화당이 영국과의 조약을 반대하였지만, 워싱턴은 자신의 특권을 사용하며 강행하였다. 워싱턴은 강력한 중앙 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부채를 조성하였고, 효율적인 세금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국가 은행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워싱턴은 공식적으로는 연방당 소속이었지만 퇴임 연설에서 당파성과 파벌주의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의 가담 등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공화주의적인 덕목을 강조하였다.

워싱턴은 1799년에 향년 67세로 사망하였다. 헨리 리는 장례식에서의 연설에서 워싱턴을 "first in war, first in peace, and first in the hearts of his countrymen"이라 칭송하였다. 역사학자들은 꾸준히 그를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